1990년부터 2019년까지 S&P 500의 연평균 수익률은 9.96%였지만,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들이 실제로 가져간 수익은 연평균 5.04%에 불과했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좀 억울했습니다. 시장은 10을 줬는데 우리는 5밖에 못 챙겼다는 뜻이니까요.

시장이 10을 줬는데 우리는 왜 5만 가져갔나
S&P 500에 투자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주 단순합니다. 미국 대형주 500개를 한 번에 사고 가만히 두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드뭅니다.
1960년대 주식 투자자들의 평균 보유 기간은 8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거래가 일상화된 2022년 기준으로 같은 수치를 보면 평균 보유 기간이 10개월로 줄어들었습니다. 노후를 위한 자산을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편의점 컵라면 고르듯 사고팔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투자를 시작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매일 계좌를 열어봤고, 조금이라도 오르면 팔고 싶었습니다. 이른바 단기매매 충동이라는 건데, 머리로는 장기 투자를 알면서도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더군요.
수익률이 반토막 나는 원인은 수수료나 세금이 아닙니다.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손실 회피 편향이란 인간이 같은 금액의 이익보다 손실에서 두 배 더 강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도록 설계된 인지적 특성을 말합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서 밝혀진 이 개념은, 왜 우리가 하락장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수익률 반토막보다 더 무서운 것, MDD
수익률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도 뼈아프지만, 아예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경우가 더 치명적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공포에 질려 주식을 매도한 투자자들 중 30.9%는 시장이 완전히 회복되고 신고가를 경신한 이후에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돈을 잃은 게 아니라 자산이 불어날 평생의 기회를 그날의 공포와 맞바꿔 버린 겁니다.
투자를 이야기할 때 MDD(Maximum Drawdown)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MDD란 특정 기간 동안 포트폴리오가 고점에서 저점까지 얼마나 하락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내 계좌가 가장 좋았던 날과 가장 나빴던 날을 비교했을 때 얼마나 박살 났는지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S&P 500의 MDD는 -57%였습니다. 1억 원을 넣었다면 4,300만 원만 남는다는 계산입니다. 저는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뭐, 다시 오르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 기간이 2007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무려 17개월간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군대를 다시 다녀오는 것과 맞먹는 시간 동안 매일 아침 계좌 잔고가 줄어드는 걸 봐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하락장이 더 잔인한 이유는 한 번에 폭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오늘 2% 빠지고, 내일 1% 반등하고, 모레 3% 빠지는 식으로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며 멘탈을 서서히 갉아먹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제 그만하자, 남은 돈이라도 건지자"는 생각이 드는 건 바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목표 금액 없는 투자는 목적지 없는 항해다
하락장에서 버티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목표 금액이 없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냥 부자가 되고 싶다,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만 가지고 시장에 들어오면, 조금만 하락해도 이러다 거지 되는 거 아닌가라는 공포에 쉽게 무너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4% 법칙이 유용하게 쓰입니다. 4% 법칙이란 미국 트리니티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이론으로, 은퇴 시점의 자산에서 매년 4%씩만 인출하면 원금이 고갈되지 않고 생존할 확률이 98% 이상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를 역으로 활용하면 은퇴에 필요한 자산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연간 생활비에 25를 곱하면 됩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부부의 적정 노후 생활비는 월 300만 원 수준입니다(출처: 국민연금연구원).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3,600만 원, 여기에 25를 곱하면 9억 원이 나옵니다. 월 500만 원을 원한다면 15억 원이 목표가 됩니다. 막연한 100억 부자가 아니라 내 생활 수준에 맞는 구체적인 숫자가 생기는 순간, 투자는 도박에서 계획으로 바뀝니다.
제가 이 계산을 처음 해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9억이라는 숫자가 생각보다 막막하지 않게 느껴졌거든요. 물론 시간이 걸리지만, S&P 500의 역사적 연평균 수익률을 대입해서 정립식 투자(Dollar-Cost Averaging)로 역산하면 달성 불가능한 숫자가 아닙니다. 정립식 투자란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매달 일정 금액을 꾸준히 매수하는 방식으로, 고점에서 몰아사는 리스크를 분산시켜 줍니다.
하락장에서 버티기 위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목표 금액(FIRE 숫자)을 미리 계산해두고 하락 시 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 하락장에서 매일 계좌를 확인하지 않는다
- 변동성은 리스크가 아니라 높은 수익률을 받기 위해 치르는 비용으로 인식한다
- 폭락 직후 반등이 집중된다는 데이터를 기억하고 섣불리 매도하지 않는다
수익률보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JP모건이 발표한 20년간의 데이터 분석 결과는 꽤 충격적입니다(출처: JP모건 자산운용). 20년 내내 시장에 머물렀을 때 연평균 수익률은 9.5%였는데, 만약 수익률 상위 10일만 놓쳤다면 수익률은 5.3%로 반토막 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날의 60%가 주가가 가장 많이 떨어진 날로부터 2주 안에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무시하기 어려운 데이터입니다. 공포에 질려 팔고 나서 다음 주에 시장이 급반등한다면, 그 손실은 단순히 수익률 몇 퍼센트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리 효과가 사라지고 재진입 타이밍을 놓쳐 수십 년의 투자 계획 전체가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복리(Compound Interest)라는 개념이 여기서 핵심입니다. 복리란 원금뿐만 아니라 이전에 발생한 이자나 수익에도 다시 수익이 붙는 구조로,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하급수적인 자산 증가를 만들어냅니다. 10년이 넘어가면서 복리 효과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하락장에서 도망치는 것은 가장 결정적인 구간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결국 투자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계좌를 매일 열어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데이터들을 알고 나서부터는 빨간 숫자를 보더라도 예전처럼 손이 먼저 움직이지는 않게 됐습니다.
S&P 500 ETF 투자는 틀린 선택이 아닙니다. 다만 그 길을 완주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9억이든 15억이든 본인의 FIRE 숫자를 지금 당장 계산해 두십시오. 하락장이 왔을 때 그 숫자 하나가 생각보다 큰 닻이 되어줍니다. 오늘의 폭락은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하는 급행 열차일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20년 후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